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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산업

제약 산업에서 빅테크 기업(구글, 애플, 아마존)의 진출과 협업 사례

1. 들어가며: 경계가 사라지는 산업, 빅테크의 제약 산업 진출 배경

지난 수십 년 동안 제약 산업은 비교적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성격을 유지해왔다. 신약 개발은 수년에서 수십 년의 긴 시간이 필요하고, 높은 R&D 비용과 까다로운 규제 요건 등으로 인해 외부 기업이 쉽게 뛰어들 수 없는 구조였다. 하지만 2020년 팬데믹을 기점으로, 의료 산업 전반에 걸쳐 ‘디지털화’라는 거대한 흐름이 밀려오며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주목받는 변화 중 하나는 바로 빅테크(Big Tech) 기업들의 헬스케어 및 제약 산업으로의 진출이다. 구글, 애플, 아마존을 중심으로 한 IT 공룡들이 기존 제약 산업과의 협업은 물론, 자체 플랫폼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진료, 진단, 예측, 복약 순응도 관리, 유전체 분석 등 다양한 분야에 발을 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기술 중심의 데이터 기업들이 전통 제약사들과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그리고 이들이 진정 제약 산업의 ‘판’을 바꾸고 있는지, 지금부터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자.


2. 구글(Google)의 헬스케어 확장 전략

2-1. 알파벳의 자회사 베릴리(Verily)와 생명과학 혁신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Alphabet)은 헬스케어 부문 강화를 위해 다양한 자회사를 통해 접근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베릴리 라이프 사이언스(Verily Life Sciences)가 있다. 베릴리는 ‘정밀 의료(Precision Medicine)’를 목표로 다양한 연구 프로젝트와 산업 파트너십을 추진 중이다.

예를 들어, 베릴리는 노바티스와 함께 안질환 관련 공동 연구를 진행했고, 사노피와는 제2형 당뇨병 관리를 위한 합작 법인인 Onduo를 설립했다. 또한 2022년에는 미국 최대의 보험사 중 하나인 Humana와 파트너십을 맺고 만성 질환 관리 플랫폼을 공동 개발 중이다.

2-2. 딥마인드(DeepMind)와 단백질 예측 혁신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자회사는 딥마인드(DeepMind)다. 딥마인드는 원래 인공지능(AI) 기술의 연구개발을 주도하던 조직이었지만, 2020년 AlphaFold라는 단백질 구조 예측 AI를 공개하며 바이오 산업 전체를 뒤흔들었다.

기존에는 단백질 구조 예측이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렸다면, AlphaFold는 이를 며칠 안에 예측해냈고, 실제로 그 정확도 또한 매우 높았다. 이 기술은 단백질 기반 신약 개발의 타임라인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제약사들과 협업 가능성을 크게 열어주었다.

2-3. 구글 헬스와 의료 데이터 통합

구글은 Google Health라는 브랜드를 통해 병원 시스템, 의료 영상 분석, 환자 기록 전자화 등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Mayo Clinic 등 미국의 대형 병원과의 협업을 통해 AI 기반 의료 영상 판독 솔루션을 제공 중이며, ‘Google Fit’ 플랫폼을 통해 웨어러블 헬스케어 데이터 수집 및 통합도 이루어지고 있다.


3. 애플(Apple)의 건강 관리 기술 전략

3-1. 애플 워치 중심의 디지털 헬스 생태계

애플은 Apple Watch를 중심으로 헬스케어 시장에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애플 워치는 단순한 스마트워치를 넘어, 심박수 측정, 심전도(ECG) 분석, 혈중 산소포화도 측정 등의 기능을 갖춘 웨어러블 헬스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애플은 의료 연구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수집된 생체 데이터를 실제 임상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예컨대, Stanford University와 협력하여 심장 질환 조기 발견 연구를 진행했고, Johnson & Johnson과는 고령층 대상의 부정맥 탐지 연구를 수행했다.

3-2. HealthKit, ResearchKit, CareKit의 3단 전략

애플의 디지털 헬스 플랫폼은 단순히 웨어러블 기기 판매에 그치지 않는다. HealthKit(건강 데이터 통합), ResearchKit(임상연구 지원), CareKit(자가진료 및 회복 관리 지원) 등 3개의 개발 플랫폼을 통해 의료 연구자, 의사, 환자를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하는 구조를 설계했다.

이로 인해 제약사나 병원은 애플의 플랫폼을 통해 환자 데이터를 보다 쉽고 정확하게 확보하고, 이를 활용한 치료 효과 분석 및 신약 연구도 가능해졌다. 이는 기존의 병원 중심 임상시험 구조를 환자 중심의 분산형 임상시험(DCT)으로 변화시키는 데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4. 아마존(Amazon)의 헬스케어 유통 혁신

4-1. Amazon Pharmacy와 약국 서비스의 디지털화

아마존은 2018년 PillPack이라는 온라인 약국 스타트업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약국 유통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후 2020년에는 Amazon Pharmacy를 정식 론칭하며, 처방약 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플랫폼은 아마존의 기존 전자상거래 인프라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사용자 입장에서는 약국 방문 없이 모바일로 처방약을 주문하고 집에서 받을 수 있는 간편한 구조다. 이는 고령자, 만성질환자 등 약물 순응도가 중요한 환자들에게 매우 유용하게 작용하고 있다.

4-2. Amazon Care와 1차 진료 플랫폼 구축

아마존은 Amazon Care라는 원격의료 플랫폼도 운영하고 있다. 이는 아마존의 자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먼저 운영되었지만, 현재는 외부 기업 대상의 B2B 모델로 확장 중이다. 간단한 진료부터 약 처방, 심지어 간호사 파견까지도 가능한 통합 의료 서비스로 발전하고 있다.

4-3. 클라우드 기반 헬스케어 솔루션

또한 아마존의 클라우드 부문인 AWS(Amazon Web Services)는 의료기관과 제약사의 데이터 저장 및 분석을 위한 인프라를 제공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Moderna는 코로나19 백신 개발 과정에서 AWS를 통해 유전체 데이터 분석 및 시뮬레이션을 수행했고, 이로 인해 빠른 개발에 성공한 바 있다.


5. 국내 기업과의 협업 사례 및 시사점

5-1. LG CNS와 AWS의 협업

국내에서는 LG CNS가 AWS와 협력하여 국내 제약사들의 임상데이터를 안전하게 저장하고 분석하는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이는 해외와 비교하면 다소 초기 단계이지만, 글로벌 빅테크와의 협업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5-2. 삼성전자와 애플의 웨어러블 경쟁

애플의 헬스케어 전략에 대응하기 위해 삼성전자 역시 갤럭시 워치를 중심으로 건강 관리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심전도, 혈압 측정 기능을 이미 적용했으며, 향후 혈당 측정 기능 등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이러한 기능은 국내 제약사들이 만성질환 관리 플랫폼 개발에 접목될 수 있다.

제약 산업에서 빅테크 기업(구글, 애플, 아마존)의 진출과 협업 사례
제약 산업에서 빅테크 기업(구글, 애플, 아마존)의 진출과 협업 사례

 

6. 마치며: 기술과 제약, 경계의 융합이 시작되다

과거에는 제약 기업과 IT 기업의 영역이 명확히 구분되었지만, 이제 그 경계는 급격히 허물어지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은 디지털 기술, 데이터 처리 능력, 사용자 경험 설계 능력을 앞세워 헬스케어 시장 전반에서 점차 영향력을 키우고 있으며, 기존 제약사들은 이들과의 협업을 통해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을 가속화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협력은 단순한 기술 접목을 넘어, 의료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는 혁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정밀의료, 원격진료, 맞춤형 치료, 예측 기반 질병 예방 등의 분야에서 양측의 시너지는 계속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제약 산업은 더 이상 제약사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기술 기반 기업들과의 협업을 통해, 치료의 ‘속도’, ‘정확성’, ‘접근성’을 모두 끌어올릴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국내 제약사들 역시 빅테크와의 협업 기회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디지털 헬스케어 역량을 내재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