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제약산업

Adaptive Clinical Trials(적응형 임상시험)의 활용과 미래

 

1. 서론: 고정된 임상시험에서 유연한 임상으로

신약 개발은 과학적 정밀성과 규제적 엄격함이 요구되는 산업 중 하나이다. 그 중심에 있는 임상시험은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하는 가장 중요한 단계로, 전체 신약 개발 시간과 비용의 70% 이상이 이 과정에서 소요된다. 하지만 기존의 고정형 임상시험(fixed trial)은 초기 설계대로 끝까지 진행해야 하며, 중간에 데이터를 분석하거나 환자군 구성을 변경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이는 시간과 자원의 비효율, 환자 안전성 문제, 개발 실패 가능성을 동시에 내포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주목받고 있는 개념이 바로 적응형 임상시험(Adaptive Clinical Trials)이다. 이는 사전에 정의된 규칙에 따라 임상 도중에 시험 설계를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형태로, 데이터에 기반한 빠른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하여 신약 개발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Adaptive Clinical Trials(적응형 임상시험)의 활용과 미래
Adaptive Clinical Trials(적응형 임상시험)의 활용과 미래


2. 적응형 임상시험이란 무엇인가?

적응형 임상시험이란, 임상시험이 진행되는 도중 중간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 단계의 전략을 조정할 수 있는 설계 방식을 말한다. 예를 들어, 특정 용량이 효과적이지 않다면 그 용량군을 중단하고 다른 용량군에 자원을 집중할 수 있다. 혹은 효능이 뚜렷한 특정 하위 환자군에만 시험을 집중함으로써 치료 타깃을 보다 정밀하게 조정할 수도 있다.

이러한 설계는 FDA 및 EMA와 같은 규제 기관에서도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실제로 여러 대형 제약사와 바이오텍들이 이를 적용하여 비용 절감과 승인 가속화에 성공한 바 있다.


3. 적응형 임상시험의 주요 설계 유형

유형                        설명                                                                                              활용 예시

 

샘플 사이즈 재조정 중간 분석 결과에 따라 피험자 수를 늘리거나 줄이는 방식 시험군 간 차이가 작을 때 샘플 수 증가
임상군 추가/제외 효과가 없거나 부작용이 큰 군은 중단하고, 가능성 있는 군은 추가하는 방식 특정 용량군 제외 후 최적 용량 집중
무작위 배정비율 변경 치료군과 대조군의 환자 배정 비율을 조정해 효율성 향상 1:1 비율에서 2:1 또는 3:1로 변경
순차적 분석 일정 간격으로 중간 분석을 수행해 조기 중단 또는 확대 결정을 내리는 방식 통계적으로 우위 확인 시 시험 조기 종료 가능
적응형 플랫폼 시험 여러 치료제/환자군/질환을 하나의 플랫폼에서 테스트, 실시간으로 설계 수정 가능 COVID-19 치료제에 사용된 RECOVERY 시험 등

4. 적응형 임상시험의 장점

1) 신약 개발의 시간 단축

적응형 설계를 활용하면 비효율적이거나 유의미하지 않은 시험군을 조기에 배제할 수 있어, 전체 개발 소요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다. 이는 특히 빠른 시장 진입이 필요한 항암제, 희귀질환 치료제, 감염병 백신 등에 매우 유리하다.

2) 자원 및 비용의 효율적 활용

무의미한 시험군에 자원을 낭비하지 않고, 효과 가능성이 높은 군에 집중함으로써 개발 비용을 절감하고 ROI(투자 대비 수익률)를 높일 수 있다.

3) 윤리적 환자 보호

부작용이 큰 용량군을 빠르게 배제하거나, 유효성이 명확한 경우 빠르게 허가 신청으로 전환할 수 있어, 환자의 치료 기회를 보호할 수 있다.

4) 정밀의학 시대와의 궁합

환자군을 유연하게 재조정하거나 특정 바이오마커를 기반으로 하위 그룹을 선별할 수 있어, 정밀의학과의 접점에서도 매우 유용하다.


5. 실제 활용 사례

① COVID-19 팬데믹 기간의 RECOVERY 시험

영국 정부 주도로 진행된 RECOVERY trial은 대표적인 적응형 플랫폼 시험으로, 한 임상시험 플랫폼에서 여러 약물을 동시 비교 평가했다. 덱사메타손이 중증 환자에서 사망률을 낮춘다는 결과는 바로 이 시험에서 도출된 것이다. 이 시험은 구조적으로 적응형 설계를 도입하여, 치료효과가 없는 시험군을 빠르게 배제하고 새로운 치료제를 지속적으로 추가하였다.

② I-SPY 2 (유방암 대상)

미국에서 진행 중인 I-SPY 2 임상시험은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여러 항암제를 동시에 테스트하는 플랫폼 시험으로, 머신러닝 기반의 환자 반응 예측 알고리즘과 적응형 설계를 접목한 모델이다. 치료 반응이 좋은 환자군을 빠르게 식별하고, 새로운 약물 조합의 효과를 실시간으로 평가할 수 있어 유망한 조기 지표 발굴에도 유리하다.

③ Novartis의 항암제 BYL719 개발

노바티스는 PI3K 억제제 BYL719 개발 시 적응형 임상 전략을 활용해, 초기 임상 1상에서부터 환자의 PIK3CA 유전자 변이 여부에 따른 반응 차이를 조기에 확인하고, 임상 2상에서 이를 기반으로 적절한 환자군을 선별하여 빠른 진행이 가능했다.


6. 적응형 임상시험의 한계와 도전 과제

1) 통계적 설계의 복잡성

적응형 설계는 고도로 정교한 통계적 모델링과 사전 규칙 정의가 요구된다. 잘못 설계된 경우에는 데이터 해석의 오류나 규제 승인의 어려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

2) 규제 당국과의 조율 필요

FDA나 EMA는 적응형 설계를 인정하지만, 시험 설계 변경에 대한 사전 계획과 논리적 근거 제시를 매우 중요하게 본다. 따라서 설계 초기 단계부터 규제기관과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

3) 실시간 데이터 분석 인프라

임상시험 중간 데이터를 분석해 다음 단계를 결정하려면, 데이터 수집, 분석, 피드백 체계가 매우 빠르고 정확해야 한다. 이를 위한 인공지능, 빅데이터 분석, 전자 데이터 캡처 시스템 등의 디지털 인프라가 필수적이다.


7. 디지털 헬스 및 AI와의 융합

최근에는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하여 적응형 임상시험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하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예를 들어, 환자군의 반응 패턴을 AI로 실시간 예측하고, 그에 따라 자동으로 시험군 구성을 조정하는 형태다. 이는 사람의 판단보다 훨씬 빠르고 정밀하게 시험 전략을 최적화할 수 있다.

또한,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통해 수집된 실시간 생체신호 데이터는 임상시험에서의 의사결정 속도를 크게 높일 수 있다. 적응형 임상은 이러한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과 자연스럽게 융합되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고 있다.


8. 국내 동향과 향후 전망

한국에서도 적응형 임상시험에 대한 관심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최근 적응형 설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발간하며 공식적으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주요 병원에서는 적응형 임상을 위한 데이터 플랫폼 구축과 통계 인력 확보를 강화하고 있다.

제약사로는 한미약품, 셀트리온, SK바이오팜 등이 적응형 임상 도입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바이오 스타트업들 역시 이 방식을 통해 글로벌 임상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결론: 미래의 임상시험은 ‘지능형’으로 간다

적응형 임상시험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필연적인 변화다. 신약 개발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은 줄어들 수 없고, 환자 맞춤형 치료에 대한 요구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요구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해답이 바로 적응형 임상이다.

이러한 흐름은 앞으로 AI 기반의 자동화된 의사결정, 디지털 헬스케어 연계, 글로벌 규제의 융합과 함께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특히 희귀질환, 항암제, 감염병, 유전자 치료제 등의 영역에서는 적응형 설계가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제약산업 종사자, 투자자, 연구자 모두에게 적응형 임상시험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신약 개발 전략 그 자체의 재구성을 요구하는 혁신의 출발점이다. 이제는 “적응형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떻게 적응형으로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