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제약산업

피험자 모집의 디지털화와 그 과제

 

1. 서론: 임상시험의 첫 관문, 피험자 모집의 혁신이 필요하다

임상시험은 신약 개발의 필수적 단계로, 그 성공 여부는 종종 적절한 피험자의 적시에 확보되는가에 달려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임상시험이 제 시간 안에 피험자 모집을 완료하지 못하며, 이로 인해 시간과 비용이 급격히 상승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실제로 전체 임상시험의 약 80%가 피험자 모집 지연을 겪으며, 일부는 이로 인해 중단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피험자 모집의 디지털화(Digital Recruitment for Clinical Trials)가 주목받고 있다. 인터넷, 소셜미디어, 모바일 앱, 웨어러블 기술을 활용하여 보다 효율적이고 광범위한 피험자 모집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혁신적인 접근에는 기회만큼이나 다양한 현실적 과제와 윤리적 고려사항도 동반된다.


2. 전통적 피험자 모집 방식의 한계

피험자 모집의 디지털화와 그 과제
피험자 모집의 디지털화와 그 과제

전통적인 피험자 모집 방식은 주로 병원 내 환자 대상 홍보, 포스터, 진료 중 소개, 의뢰서 발송, 의사 네트워크 활용 등에 의존해왔다. 이러한 방식은 다음과 같은 한계를 지닌다.

  • 지리적 제약: 병원 방문이 가능한 사람으로 모집 범위가 한정됨
  • 시간 소모: 연구자가 일일이 환자를 선별하고, 일대일로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 필요
  • 다양성 부족: 연령, 인종, 사회경제적 배경 측면에서 제한된 모집군
  • 정보 접근성 부족: 임상시험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두려움을 느끼는 대중의 존재

이러한 문제들은 임상시험의 타당성을 저해할 뿐 아니라 **특정 질환에서는 외삽이 불가능한 모집 편향(selection bias)**을 일으킬 수도 있다.


3. 디지털 피험자 모집의 등장

1) 온라인 기반 플랫폼

디지털화된 피험자 모집은 웹사이트, 포털, 온라인 등록 시스템 등을 통해 환자가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글로벌 기업인 TrialX, Antidote, ClinicalTrials.gov 등이 대표적이다.

  • TrialMatch (알츠하이머협회): 환자가 직접 자신의 상태를 입력하면 적절한 임상시험을 매칭해줌
  • Pfizer Clinical Trial Finder: 환자가 간단한 검색으로 현재 참여 가능한 시험 정보를 찾고 등록 가능

이러한 방식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면서도 광범위한 도달력을 갖추는 것이 장점이다.

2) SNS와 디지털 마케팅 활용

Facebook, Instagram, Twitter 등의 SNS를 활용한 타겟 마케팅이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질환 관련 페이지를 ‘좋아요’ 한 사용자에게만 광고를 띄우는 방식이다. 이는 관심 기반 타겟팅이 가능하며, 특히 젊은 세대에서 모집 효율성이 뛰어나다.

  • 사례: 2019년, 미국의 한 제약사는 Facebook 광고만으로 평균 60% 이상 더 빠르게 피험자 모집을 완료함

3) 웨어러블 및 모바일 앱 기반

디지털 헬스 앱, 스마트워치 등 웨어러블을 통해 환자의 생체 신호를 분석하고, 특정 패턴을 가진 사람에게 임상시험 참여 기회를 안내할 수 있다. 헬스케어 플랫폼이 모집 채널로 기능하는 것이다.

  • 사례: Apple의 ResearchKit 기반 임상시험에서는 사용자들이 앱을 통해 자발적으로 참여 신청
  • 국내 시도: 삼성서울병원, 카카오헬스케어가 협력하여 환자 대상 임상시험 공지 및 참여 유도를 앱으로 추진 중

4. 디지털화의 장점: 임상시험의 미래를 바꾸다

장점                                       설명

 

도달 범위 확대 지역, 국가를 초월하여 다양한 인구집단 모집 가능
시간 및 비용 절감 병원 내 전단지나 개별 설명보다 빠르고 저렴한 방법
맞춤형 타겟팅 SNS, 검색 이력 기반으로 특정 질환군에 최적화된 모집 가능
참여 편의성 향상 환자가 직접 온라인에서 신청하고 자택에서 초기 사전평가 가능
정량적 분석 가능 클릭률, 등록률, 이탈률 등 마케팅 성과 측정과 피드백 가능

이러한 장점은 특히 희귀질환, 만성질환, 젊은 세대 대상 임상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5. 그러나 현실은? 디지털 피험자 모집의 과제

① 디지털 접근성 격차

노년층이나 정보 소외 계층은 여전히 디지털 기술에 익숙하지 않다. 이는 디지털 소외(digital divide)를 야기하며, 모집군의 다양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② 개인정보 보호 이슈

온라인에서의 의료정보 수집은 매우 민감한 문제다. 환자의 클릭 하나, 등록 하나가 건강 상태의 단서가 될 수 있기에, 개인정보 보호법, GDPR, HIPAA 등 엄격한 준수가 필요하다.

③ 신뢰성 부족 및 허위 정보 가능성

일부 SNS 광고는 상업적 목적이 강하거나 부정확한 정보를 담을 수 있으며, 피험자가 오해하거나 불신할 수 있다. 따라서 검증된 채널 확보와 정직한 정보 전달이 중요하다.

④ 플랫폼 간 통합 부족

병원, CRO, 제약사 간 시스템이 연동되지 않아 중복된 정보 등록, 데이터 호환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실시간 상태 파악과 빠른 피드백에 장애가 된다.

⑤ 윤리적 문제

디지털 마케팅이 때로는 과도한 유인이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을 동반할 수 있으며, 이는 IRB(임상시험심사위원회)의 승인이나 규제 기관의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


6. 국내외 제도 및 정책 변화

1) 미국

FDA는 2022년,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임상시험 설계와 운영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디지털 피험자 모집을 장려하고 있다. 특히, SNS 활용, 모바일 등록, 전자동의(eConsent) 등 디지털 수단의 윤리적 활용 기준을 명확히 하고 있다.

2) 유럽

EMA 또한 임상시험 규제 개편(Clinical Trial Regulation 536/2014)을 통해 RWD 기반 임상 및 전자적 참여 모집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재편 중이다.

3) 한국

식약처는 2021년 전자적 동의서 및 온라인 임상시험 안내 허용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으며, K-CTC(한국임상시험산업본부)와 협력하여 디지털 기반 피험자 플랫폼 개발도 추진 중이다. 또한 보건복지부는 디지털 임상시험 데이터 허브 구축을 통해 다기관 연동 및 분석체계 마련을 시도하고 있다.


7. 앞으로의 방향: 기술과 윤리, 그리고 환자 중심성

디지털 피험자 모집은 단순히 홍보 채널을 온라인으로 옮기는 수준이 아니다. 이는 환자 중심의 임상시험, 참여의 자발성, 접근성의 평등성이라는 더 큰 가치와 직결된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방향성이 필요하다.

  • 채널의 다각화: SNS 외에도 건강정보 앱, 병원 EMR 연동 시스템, 웨어러블까지 확대
  • 신뢰기반 플랫폼 구축: 공공기관과 협력하여 검증된 정보 제공 플랫폼 운영
  • 개인정보 보호 강화: 국내외 법률에 부합하는 보안 시스템 도입
  •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환자 대상의 디지털 역량 향상 프로그램 마련
  • IRB 및 규제 가이드 준수: 적절한 동의 절차와 광고 심의, 문구 규정 준수 필요

결론: 디지털이 바꾸는 임상시험의 미래

디지털 피험자 모집은 이제 단순한 ‘옵션’이 아니다. 인구 고령화, 질환 다양화, 글로벌 임상 확대 등의 흐름 속에서 더 빠르고, 더 정확하고, 더 인간적인 임상시험을 설계하기 위해 필수적인 수단이 되고 있다.

그러나 기술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윤리, 신뢰, 제도, 접근성의 문제들이 여전히 산재해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환자의 입장에서, 환자의 목소리로부터 시작되는 임상시험 문화의 전환이다. 디지털화는 그 여정의 강력한 동반자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앞으로는 환자, 연구자, 기술 기업, 규제 기관이 ‘함께’ 만들어가는 임상시험 생태계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